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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1-4 :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존재하는 삶

ReasonJun 2023. 8. 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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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타인이 상처받고 힘들어할까 봐 말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으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절대 아니므로 혼자서 앓다가 더 빠르게 안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혼자 모든 생각들을 담아두고 참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참는 것은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치닫게 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혼자서 모든 스트레스를 담아두는 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 인내심의 한계를 돌파하여 터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터진 후 이뤄지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혼자 담아두었던 고통스러운 시간들에 대한 보상으로서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강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를 기반으로 하는 행동은 극단적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지금껏 이렇게 참아왔고, 그 누구도 자신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며, 나는 충분히 주변 사람들을 배려한 착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지 언정 그럴 수 있는 것이며 이 또한, 타인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난 충분히 참아 왔기에 이렇게 해도 괜찮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과 함께 터뜨리듯이 나오는 생각과 언행은 극단적일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말하지 않아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없었던 타인에게 그러한 언행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뻔뻔하고 가증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고 거짓말을 했으면서 갑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탓하고, 이해되지 않는 이기적인 언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타인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면서 인간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평소에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잘 표현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이 표현하는 감정과 생각을 쉽게 믿을 수 없게 되기에 신뢰로 유지되는 인간관계에 큰 문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로,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로 타인에게 모든 것을 말하는 것 또한, 위에서 얘기했듯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자신의 고민(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의 조언을 그저 받아들인다고 해도 반드시 옳은 결과로 나아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나보다 나를 모르는 타인의 생각에 따라 내 생각이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내가 고민해서 납득한 것이 아닌 그저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한 것과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본인이 생각할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해서 이뤄진 것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 의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 잘못될 시 남 탓을 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조언으로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만들어진 건지에 대한 의구심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과 깊이 있게 얘기를 한다고 한들 조언이 잘못되었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어 더욱 좋지 않은 상황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더욱 중요시 여긴다는 점, ‘나’에 대해 자기 자신보다 훨씬 아는 게 없을 수밖에 없다는 점, 어떤 문제에 대해 ‘나’의 말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단정 짓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알려주고 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해 줄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적은 가능성조차 스스로 그 어떤 확신이 없다면 조언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으므로 그 어떤 가치도 갖지 못합니다. 즉, ‘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가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인의 조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상관없이 타인을 탓하거나 의존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나’의 삶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결정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떠넘길 여지가 분명한 사실로서 조금이라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문제에 대한 본인의 감정과 생각을 결정짓고 타인의 조언을 듣기 전에 자신의 이러한 감정과 생각이 옳은지, 그른 지에 관한 주체적인 기준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내가 납득한 나의 기준에 따라 문제를 정의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나의 생각을 결정할 수 있어야지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과 결론을 정립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사람들과 공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문제와 목표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나’의 문제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통해 내가 이것을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본인만의 논리적인 생각과 기준을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사람들이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 각자의 생각(조언, 공감, 위로)을 말해줄 때 비로소 그들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여 내가 납득한 나의 결정으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타인과 상황을 통해 얻은 수많은 문제와 인사이트는 내가 납득할 때 비로소 나의 삶으로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각과 결정들은 근본적으로 타인과 상황에 크게 의존하게 되고 쉽게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했을 때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서 ‘나’를 알지 못해 불안한 사람은 진정한 본인의 문제와 해결책을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타인과 상황에 휘둘리게 되고 점점 지치게 되는 것입니다. 지친 자신은 본인이 살면서 마땅히 마주해야 할 문제와 책임을 점점 회피하게 되고, 이런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배려심 깊고, 불쌍하고,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려는 나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은 자신을 착해서, 조금 서툴러서, 난 그냥 이런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편하게 단정 짓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이런 주관적 배려심을 인정받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써 분명 내가 나를 불행하게 했음에도 내가 배려심 깊어 스스로 피해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발로 사람을 차서 다치게 했음에도 발이 순간적으로 혼자 반응한 것이고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기적이고 자신에게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제외한 타인과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모순적이게도 타인에게 이런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타인과 상황으로 끊임없이 상처받고 휘둘리면서도 계속해서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인데, 특히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자신에게 더욱 큰 상처와 스트레스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자초한 스트레스를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계속 풀게 된다면 시간이 지나 남에게 의존해야만 살 수 있게 됐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끝없는 후회와 절망 속에서 타인과 상황에 대한 증오와 스스로를 불쌍히 생각하는 애처로움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서 ‘나’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행복에 질투하고,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만족하게 됩니다. 동시에 본인은 아무것도 변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하고, 사소한 것에 짜증 내고, 오해하고,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인정에 따른 위안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르치려 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자신을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점점 극단적인 생각과 언행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시키는 악순환의 삶인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삶인지 가늠이 되시나요? 지금 이 사회를 둘러보면 이 끔찍한 삶들로 인한 문제들이 시시각각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발생되는 대부분의 문제가 서로의 오해와 섣부른 일반화, 극단적인 생각과 언행으로 발생된다는 점에서, 이로 인한 편견, 차별, 오만, 갈등 등은 정도만 다를 뿐 모두가 같은 원인과 방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방향은 본인이 가고 있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존재하는 삶 -PaL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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