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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어쩌면 나의 삶은 본문

나의 생각

1-5 : 어쩌면 나의 삶은

ReasonJun 2023. 8. 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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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그저 달달한 말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단을 통해 위로받으면서 타인과 상황에 일방적으로 맞춰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직장, 학교 등을 다니면서) 받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내’가 없는 나의 모습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타인만을 보면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정작 나는 나와 내 주변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변화하지 않으면서 남과 상황만이 달라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항상 '어차피 지금 내가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다음에 하면 되지', '누군가 하겠지', '상황이 이런 걸 어떡하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귀찮아서 하기 싫은,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언제나 착하고, 약하고, 남을 배려하고, 사회와 타인에게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황과 타인을 탓하고, 상황과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으로 (책임을 피하고 싶은) 자신에게 맞춰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생각과 태도 또한 스스로 맞다고 확신하지 못하기에 계속해서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이중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은 타인과 비교하여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본심과 행동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타인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않은 것으로 사실로서 믿고 의지할 곳을 잃은 사람은 계속해서 상황과 타인으로부터 쉽게 휘둘리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 간의 신뢰는 무너지고, 의지할 곳이 점점 없어지는 나는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렇게 내가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삶의 기준점(‘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서 ‘나’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모순을 일으키게 되고, 이 모순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입니다. 

 

상황과 타인에 따라 나의 삶이 결정되는 것으로서 최소한 믿을 수 있어야 하는 삶(‘나’)의 기준 없이 이루어지는 나의 생각과 언행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게 되고, 본인 스스로도 이에 휘둘리면서 고통받는 악순환에 갇힌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악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쌓여가는 모순들은 결국 모두를 속이는 거짓말로 이어지고 주체적인 ‘나’의 삶(생각과 결정)은 더욱 사라지게 되어 타인과 상황에 의해 결정된 삶 즉, ‘내가 없는 나의 삶’이라는 거대한 모순 속에서 살게 됩니다. 내 삶에서 그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면서 정작 나는 살아있는, 나의 삶 그 자체가 가장 근본적이고 거대한 모순이 되어 끊임없이 불행하고 고통받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약해진 자신은 더더욱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문제를 인지하는 관점과 방식 또한, 여타 다른 행동/생각과 마찬가지로 같이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면 습관처럼 굳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라고 생각한 것을 해결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에게 진정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잠깐 동안은 행복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행복은 얻지 못하게 됩니다. ‘나’를 알지 못한 다는 것은 내가 삶을 살면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이는 내가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와 두려움, 그리고 문제의 근본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잘못된 질문에 옳은 답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함으로써(무엇이 옳고 그르며 그 근거는 무엇인지, 무엇이 상대적이며 어디까지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인지 등) 끊임없이 발생되는 타인, 자신과의 오해와 갈등은 문제 해결에 피로감을 느끼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 문제를 해결해도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경험과,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람 간의 오해와 갈등을 해결하는 것에 큰 피로가 누적된 사람은 점점 문제를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문제를 문제라고 애써 보지 않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도 의미가 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삶을 살면서 상황 / 타인과 함께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오해와 갈등들을 마주하여 진지하게 원인을 고민하고 해결하면서 점점 능숙하고 책임감 있게 대처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회피하고, 무시하고, 그저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상황과 타인을 인지하고 적응하는 데에만 익숙해지게 되고 참고 견디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타인과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였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 가능한(타당한) 부분으로(어쩔 수 없는 사실로서)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과 삶은 원래 이렇기에 목표와 신념 같은 것들은 이상적인 것이며,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나는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왜 원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이를 위해 변화하지 않았으면서 이런 지금 자신의 이런 모습이 현실적인 것이라 결정짓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모르는 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타인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무기력해집니다. ‘어차피 내가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으니까’, ‘원래 사회(현실, 인생)가 이런 거지’, ‘남들도 다 똑같아’, ‘사람은 변하지 않아’, '어차피 의미 없고 실패할 거야'와 같이 자신은 물론 타인과 상황을 추상적이고 주관적인(이기적인) 생각으로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편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생각과 결정은 마음의 짐을 잠시나마 덜어줄 수는 있어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기에 결국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는 후에 자신은 그저 참고 견뎌 왔던 문제점들이 해소되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닌 문제가 해소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 스스로 참고 견뎌왔던 자신이 착하고 옳은 것이라는 생각을 할 여지가 됩니다. 

 

 

나를 모르는 나 -PaL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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