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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삶의 목적과 모습 본문

나의 생각

1-7 : 삶의 목적과 모습

ReasonJun 2023. 9. 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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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통해 저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결정들과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에 빠졌습니다. 과거에 내가 내렸던 결정과 생각들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분간하는 기준과 함께 이 결정이 정말 내가 내린 결정이 맞는지에 대한 기준을 잡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라는 질문을 통해 내가 내렸던 결정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알아내려고 했지만 내가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과거의 생각, 결정이 진정 나의 생각과 결정이었는지, 옳은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확실하고 부분적인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어떤 결론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불가능했으며,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굉장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여지가 다분하여 ‘나’를 확실히 정의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점점 확실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확실한 '나'의 생각과 기준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내 생각과 행동 그리고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를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회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회상을 통해 나의 생각과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생각했지만 모든 정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틀린 것을 인정하여 불편함과 책임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해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데 이렇게 됐구나, 그럼 앞으로 이렇게 해야지/하지 말아야지’와 같이 표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과거에 내가 그렇게 했던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야’와 같이 타인과 상황을 탓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온 결론은 어느 것 하나 맞다고 확신할 수 없었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객관적 사실인지, 주관적 감정/생각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결정짓지 못한 채 혼란과 스트레스만 가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통해 ‘나’에 대해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확신하는 기준을 갖고, 내 생각과 결정에 대한 객관적이고 전체적인 사실을 통해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객관적인 기준 없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기억의 조각을 들추면서 자신을 알고자 했던 주관적인 사람에게 확신할 수 있는 ‘나’를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고 잘했는지, 앞으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이 어떤 삶이고 옳은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과 확신이 있어야 ‘나’를 바로 알고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옳고 그름에 관한 기준과 근거를 정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기준과 생각(철학)은 앞으로 맞닥뜨릴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 적용될 수 있으면서 평생 믿고 따를 수 있어야 하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누군가의 삶에 가장 근본적이라 할 수 있는 기준과 생각이 논리적으로 부정당할 수 있다면, 이는 그 사람의 삶에 큰 모순과 문제가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모두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당연한(절대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논리를 구성하여 삶에 대한 기준과 생각을 정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기준과 생각이 모두에게 간단히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당연한 사실로서 절대적인 옳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접근으로 확신할 수 있는 삶의 기준을 잡고 그 위에서 자신을 돌아본다면 비로소 ‘나’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나’의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나의 목표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한다면 최소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큰 의심 없이 지금 나아가고 있는 나의 삶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정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옳은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어떤 기준에서 옳은 생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한 생각?,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생각?, 약자들을 위한 생각? 여러 답안을 생각해 봤지만 모두가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 답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틀릴 수도 있는 답이었습니다. 모든 답안의 근거가 주관적이면서도 부분적이었는데 위와 같은 답들의 근거는 전부 나와 과거 사람들의 경험에 의존했으며 몇 가지 상황에 우연히 들어맞았던 경우로 전체를 판단해 버리는 일반화의 오류도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왜?’라는 질문을 하면 할수록 답변은 점점 모호해졌으며 결국 처음 답안에 부합되지 않게 되면서 항상 반박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다수와 개인이 가진 행복의 기준, 사랑의 기준, 약자의 기준이 서로 다르고 매우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질문을 통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고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기 전에 그 생각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현상과 존재에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어떤 현상과 존재가 어떻게,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이 존재가 어떠한 목적과 함께 그것을 이루기 위한 특정 형태와 움직임으로 존재한다는 정보를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어떤 존재/현상의 이유(원인)를 알 수 있다면 진정한 존재의 목적과 그 방향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지금 삶을 고민하는 나는 왜 존재하는 가?'에 대한 것이 됩니다. 여기서 나는 삶 그 자체이므로 삶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삶은 왜 존재할까요? 기본적으로 삶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중요한 것을 갖고 싶어 합니다. 이는 삶의 목적이 더 많은 가치를 얻는 것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삶은 언제나 가치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삶의 존재 가치와 함께 삶의 존재 이유를 느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인 삶의 가치를 충족시키면서 삶을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삶의 가치를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삶이 어떤 형태와 움직임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삶의 가치는 삶의 형태와 움직임으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형태와 움직임은 지금 우리의 삶이 실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모습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마치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이나 자연처럼 말입니다. 즉, 객관적인 사실로서 삶의 형태와 움직임은 존재하는 것으로, 만약 이를 알 수 있다면 삶의 근본적인 가치/목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객관적인 사실로서 삶의 가치를 증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삶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이해하게 된다면 삶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분명한 사실)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면 원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은 ‘삶은 어떤 형태와 움직임을 갖고 있는 가?’이며 해답은 절대적인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는 근본적인 개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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